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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당신 가슴에 기대어 당신의 말씀을 들었다 덧글 0 | 조회 53 | 2021-05-07 16:46:01
최동민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당신 가슴에 기대어 당신의 말씀을 들었다는 사도 요한처럼 저도 당신 곁에 바싹 다가앉아서 당신의 그 모습을 살펴보렵니다. 당신이 지난 날 제게 베풀어주신 무한한 은총과 사랑을 다시 기억하며, 붉은 포도주가 넘쳐흐르는 저의 술잔에 말로는다 표현 못할 저의 참회의 마음을 눈물로 담겠습니다.3해가 떠나면서 내게 보내준 그 마지막 눈빛을 못내 잊지 못하네. 나는 다시 철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눈물을 가라앉히네.저녁이 되어, 하나 둘 불이 켜지는 이웃의 창마다 나는 기쁨의 종을 달아주는 님프가 되고 싶다. 집집마다 들어가 슬픔을 기쁨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고 몰래 빠져 나와 하늘의 별을 보고 깔깔 웃어도 보는 반딧불 요정이고 싶다. 멀리 있어도 집채로 내게 가까이 오는 수많은 이웃의 불켜진 창을 보며 내 마음의 창에도 오색 찬란하게 타오르는 고마움의 불빛. 함께 있음의 복됨이여.우리의 새해는 기쁨의 춤을 추겠지?친구야. 이렇게 스산한 날에도 내가 춥지 않은 것은 나를 생각해주는 네 마음이 불빛처럼 따스하게 가까이 있기 때문이야. 꼼짝못하고 누워서 앓을 때에도 내가 슬프지 않은 것은 알기만 하면 먼데서도 금방 달려올 것 같은 너의 그 마음을 내가 읽을 수 있기 때문이야. 약해질 때마다 나를 든든하게 하고, 먼데서도 가까이 손잡아 주는 나의 친구야, 숨어 있다가도 어디선지 금방 나타날 것만 같은 반딧불 같은 친구야.그분의 심부름으로 왔다고나의 애송시기도의 나무로 서서밤하늘에서 별을 찾듯 책을 연다이런저런 결심을 내세우는 것조차내 마음속엔 아름다운 굴뚝이 하나 있지. 너를 향한 그리움이 하얀 연기로 피어오르다 노래가 되는 너의 집이기도 한 나의 집. 이 하얀 집으로 너는 오들도 들어오렴, 친구야.홍윤숙노엘 수녀님,다른 사람에겐 잘 죽어 잘 익은 성숙함을 기대하면서도 자신의 설익음은 개의치 않는다면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음악을 사이에 두고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그러고 보니 눈에 보이는 나의 방을 치우고 정리하는 일 못지 않게 눈에 보이지
4깊고 어진 눈빛의 한 사제천리향으로 살아서 피는혹시 책을 읽다 만난 어느 좋은 구절을 말이나 글로 인용하고 싶다면 이 또한 책 이름과 지은이의 이름을 즉시 메모해서 기억해 두면 될 텐데 우리는 너무 자주 어느 책에선가 읽은 일이 있다 누군가의 글이었던가하고 얼버무리는 식의 표현을 자주 하고 있으며, 이런 표현에 아예 익숙해져버린 듯하다. 다른 이들이 쓴 글에서 이런 식으로 인용되었거나 작자 미상으로 표기된 나의 글들도 나는 꽤 여러번 보았었다.희랍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Hermes)가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날개 달린 샌들을 신고 제우스 신의 심부름을 다니는 사자였듯이 나도 하느님과 인간의 사랑받는 사자가 되고 싶다. 비록 헤르메스처럼 나는 날개도 없고 그만큼 민첩할 수도 없지만 마음으로야 얼마든지 날아다닐 수 있지 않은가?5어떤 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애송시를 붓글씨로 적어 카드에 붙이기도 했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형식적이고 상투적인 말보다는 받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구체적이고 진실어린 애용이 훨씬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랑과 격려, 축원과 기도로 가득한 카드 속의 말들을 나도 몇 개 골라서 읽어본다.해마다 여름이 오면 다시 펼쳐 읽게 되는 린드버그 여사의 바다의 선물은 특히 휴가를 앞둔 모든 이들에게 꼭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휴가는 직장이나 학교, 군대, 단체에서 일정한 기간 쉬는 일, 또는 그 겨를이라고 되어 있다. 바캉스의 본뜻이 빈터 빈방 빈틈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휴가는 우리가 바쁘고 피곤했던 일상을 떠나 잘 쉬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텅 빈 고독 속에서의 자기 발견, 쉼으로써의 충만을 시사하고 있다.옳다고 판단되는 일에는 항상 소신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겠다. 누구 못지 않게 성실하게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기에 나름대로 바쁘기도 했다. 악한 것을 악하다고 말할 용기가 없다면 마음속으로 진실하게 믿는 용기는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부산에 있는 가족들에게 편지를 통해서 고백했던 그의 말들